지봉 이수광은 서울 낙산(駱山) 언저리의 상봉에 비를 피할 만한 작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당호도 비우당(庇雨堂)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조판서도 지냈고 지봉유설이라는 명저도 남긴 지봉(芝峯)의 아호도 낙산의 작은 봉오리를 따 쓴 것이다.
동대문 밖의 작은 집과 주변을 사랑한 경세가 실학자의 뜻이 깊다.
주변에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요즘 지식인과 권력자들은 이익 없이 움직이지 않고 청빈의 덕성을 아예 비현실적으로 간주하는 것과 비교 된다.
학문의 깊이는 주변의 구체적인 것을 잘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임진외란 이후 피폐한 사람살이를 직시하고 무실(務實)을 중시한 지성의 뜻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