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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낙산아랫동네이야기> 사진전에 출품하면서
이른바 "작가의 말"을 썼었습니다.
이화마을 기록 10년을 겸하는 이번 전시에 즈음해 책자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작업이 늦어져 이달 말 즈음에 나옵니다.

사진을 잘 찍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이런 시선에서 이 동네를 보았고 또 그런 시선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공부의 방향이 조금은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을 일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산과 계곡에서 살아가기

이창수(李昌洙)

심산유곡(深山幽谷): 깊은 산과 으슥한 골짜기.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고, 산이 깊으면 골짜기도 으슥하기 마련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아니면 그대들의 적당한 사교를 위해서 산을 오른다. 어떤 이는 산을 생계를 위해, 주거를 위해 오른다. 산에는 사시사철 사람들이 있다.

낙산(駱山)은 성곽을 이고 500년 이상을 버텨 왔다. 성곽은 그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성곽의 안팎과 상관없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산에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집주인들과, 쪽방 같은 원룸에 임차인들이 거주한다. 또 가내 봉제공장이나 작은 가게, 게스트하우스, 커피숍들이 있다. 낙산은 성곽길의 경계가 아니라, 산이며 여러 갈래의 계곡길이 있다.

종로03번 마을버스 기사가 이 산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는 일로 아침을 연다. 이 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이 든 이들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산 아래로 출근을 한다. 산에서만 살 수 없다.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계곡이다. 따닥따닥 붙은 낮은 집들은 산에 붙어있는 바위 같다. 낙산은 가파르고 그래서 계곡도 으슥하다.

평지 높은 빌딩들 꼭대기도 어찌 보면 산이다. 도시는 다 심산유곡이거나 그것으로 변해 버렸다. 여기 낙산, 도심도 심산유곡이다. 거기엔 특별한 산사람들이 살고 있다.